미국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에 따르면 인구 200만에 불과한 라스베이거스에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무려 43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고의 관광, 휴양, 엔터테인먼트를 자랑하는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3명의 ‘전설’적인 인물들로 인해 현대판 ‘라스베이거스 신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주인공은 MGM 그룹의 커크 커코리언(2015년 별세), 윈 그룹의 스티브 윈(75), 샌즈 그룹의 셸던 아델슨(84) 이다.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MGM그랜드 카지노 호텔 안내 간판. ⓒ프레시안
MGM 그룹의 커코리언은 맨주먹으로 시작해 세계 최고의 카지노 재벌이 된 사실상 ‘흙 수저’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그는 로스엔젤리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도박꾼들을 실어 나르면서 라스베이거스와 인연을 맺은 뒤 카지노 재벌이 된 특이한 케이스다.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17년 아르메니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돈벌이를 시작하였다.
운동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프로복싱 선수인 형의 영향으로 세계 챔피언의 꿈을 안고 복싱선수로도 뛰었다. 33승 4패의 화려한 전적이 말해주듯 태평양 웰터급 아마추어 챔피언까지 지낸
인물이다.
초등학교 시절, 신문팔이에 나서야 하는 등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는 22살 나이에도 시간당 45센트를 버는 초라한 노동자 신세에 머물렀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춥고 배고픈’ 처지의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다가왔다. 1939년 캐나다 공군에서 비행사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는 자원하여 공군 조종사가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는 전쟁 중 캐나다에서 만든 폭탄을 스코틀랜드로 운반하는 매우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었지만 목숨을 걸고 2년 반 동안 ‘폭탄배달부’로 돈을 벌었다.
전쟁 종전 후에는 하와이에서 태평양전쟁 때 쓰다 버린 사실상 폐기된 군용비행기를 대당 1000~1200달러의 이윤을 남기고 본토에 되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커코리언은 사업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는 두 대의 못 쓰게 된 비행기에서 부품을 추려서 판매 가능한 한 대의 비행기를 만들어 자신이 직접 미국 본토에 비행기를 몰고 가서 판매하는 방법으로 5만 달러를 벌었다. 이 역시 목숨을 건 사업이었다.
중고 비행기 판매 사업으로 5만 달러의 ‘자본금’이 모아지자 커코리언은 평소 관심을 가졌던 고객 운송 사업에 뛰어들었다.
5만 달러로 3대의 중고 비행기를 구입한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도박사를 실어 나르는 전세기 운영권을 인수했다. 이때부터 그는 라스베이거스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커코리언은 승부사 기질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커 판에서 과감한 베팅을 즐겼으며, 이러한 도박사 기질은 사업에서도 화끈한 베팅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뛰어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여 성공한 사업체를 상당한 이윤을 남기고 처분하면서, 가치가 있는 기업을 사들이는 M&A 기법을 펼쳤다.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진 커코리언에 대해 은행들은 감동의 눈길을 보냈고 이후 은행들은 그에게 필요한 시기, 필요한 자본을 지원해 주는 든든한 후원군이 되었다.
처음에는 수만 달러로 시작한 기업체 사고 팔기가 수십 만,수백 만 달러를 넘어 라스베이거스에 본격 진출하는 시기에는 작은 항공사를 8500만 달러에 팔아 치우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커코리언 회장의 성공비결은 무엇보다도 사업적 혜안과 승부사적 기질을 꼽는다. 특유의 사업적 본능에 따라 기업 사냥꾼으로 엄청난 부를 쌓으며 억만장자에 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가 아이러니 하게도 라스베이거스에서 첫 번째 사들인 호텔은 ‘벅시 시걸’이 세운 플라밍고호텔이다.
시걸이 암살된 이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플라밍고를 인수한 그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플라밍고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지 않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호텔카지노에서 일할 능력을 갖춘 직원들을 양성하는 장소로 플라밍고를 활용했던 것이다.
플라밍고에서 직원들이 능숙한 경지에 달할 즈음 그는 은행에서 6000만 달러를 대출받아 1512개의 객실을 갖춘 세계 최대 호텔 ‘인터내셔널 호텔 카지노’를 개장했다.
이 호텔은 개장과 동시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카지노가 되었다. 인터내셔널 카지노는 개장 한 달 만에 순 이익으로 500만 달러를 벌어들였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 카지노로 큰돈을 번 커코리언은 허리우드 최대 영화사인 MGM을 인수하면서 영화산업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MGM 영화사 인수로 카지노 호텔에도 MGM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1924년 설립된 MGM은 헐리우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영화사로 ‘영화의 시대’로 불려졌던 1930~1940년대에 절정기를 누렸다. 대표적인 스타 여자배우로 그레타 가르보, 존 길버트, 클라크 게이블, 캐서린 햅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진 켈리, 그리어 가슨 등이 꼽힌다.
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고전적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벤허’, ‘닥터 지바고’를 비롯해 ‘007시리즈’를 만든 영화사가 MGM이다. MGM 로고에 사자울음이 나오는 것으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MGM 영화사업은 그에게 큰 손실을 안겨줬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1억2000만 달러를 투자해 2100개 객실 규모의 세계 최대호텔인 ‘MGM 그랜드’를 1973년 개장하면서 승부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직원이 무려 4500명에 달하는 초대형 호텔인 MGM 그랜드는 커코리언이 남다른 열정과 아이디어를 쏟은 덕분에 1974년 한 해 동안에 무려 22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라스베이거스 역사에서 사상 최고의 이윤을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인생은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라스베이거스 최고의 호텔과 카지노로 소문난 MGM그랜드에 몇 년 후 재앙이 닥쳤다.
1980년 11월 21일 MGM그랜드 호텔은 오전 7시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기 때문이다.
<MGM의 거대한 정문 위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경계경보는 천천히 전달되었다. 카지노 내부에서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산산조각이 났고, 천정의 패널은 깨지면서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이제껏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두 번째 불덩어리가 정문 입구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단 90초 사이에 카지노와 그 주변의 생명이 사라졌다. 화재가 진압 되었을 때엔 이미 85명이 목숨을 잃은 뒤였다. ….. ‘생각의 혁신, 라스베이거스에 답이 있다’에서>
MGM그랜드 대표였던 커코리언과 보험회사는 희생자 가족에게 7500만 달러를 보상금으로 지불했고, 추가로 지출된 보상금도 엄청난 거액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최악의 화재참사로 주변에서는 MGM과 함께 커코리언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재발생 8개월이 지난 1981년 7월 29일 MGM그랜드는 리모델링을 거쳐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고, 카지노와 호텔 객실은 전성기와 다름없이 고객들로 붐볐다. 역시 커코리언이라는 찬사가 나왔다.
커코리언이 재기에 성공하고 5년이 지난 뒤엔 MGM그랜드를 4억 4000만 달러에 처분하면서 다시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했다.
MGM그랜드를 처분한 이후 경쟁사였던 ‘스티브 윈’의 미라지 리조트, 만달레이 리조트그룹까지 인수하면서 그는 세계 최고의 카지노 재벌로 발돋움 했다. 이때부터 그는 언론에서 ‘기업사냥꾼’이라 호칭하기 시작했다.
미라지는 스티브 윈이 6억 30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자된 카지노 호텔이었다.
또한 그는 1980년대 자동차 업체 크라이슬러, 2005년에는 제너럴모터스에도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이때부터 그는 ‘투자의 귀재’, ‘M&A의 대부’라는 새로운 별칭이 붙었다.
한편 커코리언은 카지노 업계에서 가장 기부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카지노 CEO로 알려지기도 했다.
딸 이름을 딴 린시 재단은 1988년 커코리언의 조국 아르메니아에서 발생한 지진 희생자 지원에 거액을 지원했다. 또 로스엔젤리스 캘리포니아 대학에 2억 달러를 쾌척하기도 했다.
현재 MGM그룹은 MGM그랜드를 중심으로 가장 화려하고 우아한 아리아리조트&카지노, 벨라지오, 뉴욕 뉴욕, 맨덜레이 베이, 미라지, 룩소, 서커스서커스, 엑스 칼리버, 몬테카를로 등 10개의 호텔카지노 리조트를 보유하고 있다.
12조 원이 넘는 공사비가 투자된 아리아리조트는 총 7개 빌딩단지에 카지노, 4800개 객실의 최고급 호텔, 2500개 객실의 콘도, 수영장, 명품쇼핑센터, 공연장, 레스토랑을 갖춘 세계 최고 최대의 복합레저단지를 자랑한다.
또 그는 아시아의 황금시장인 마카오에도 진출해 2007년 MGM마카오를 개장했다. MGM마카오는 스탠리 호 둘째 부인의 딸 팬시 호가 대표로 있는 부동산 기업 순탁그룹과 공동 지분으로 만들어졌다.
MGM 마카오는 ‘마카오의 카지노 황제’ 스탠리 호와 넷째 부인 안젤라 렁의 러브스토리를 테마로 ‘라스트 프로포즈’(2008년 제작)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오는 9월에는 MGM의 마카오 두 번째 카지노리조트인 ‘MGM 타이파’가 개장할 예정이다.
언론과 접촉을 꺼린 커코리언은 2005년 ‘LA타임스’와의 단독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 사업적 비전을 궁금해 한다. 나는 사업체를 인수할 때마다 5만 달러 이상의 이익을 남기면 행복해 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6월 15일 커코리언이 별세하자 짐 머런 MGM CEO는 “6만 2000명에 달하는 임직원들은 위대한 개인이자 사업자, 소통자, 혁신가 이며 미국의 가장 위대한 세대 중 한 명인 커코리언에 경의를 표한다. 탁월한 사업 통찰력과 변함없는 진실성으로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명망 높고 영향력 있는 재계 인사 중 한 명이 되었다.”고 애도했다.